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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빌라

[창작] 관음본능






* 대학교 수업 때 과제로 제출했던 글입니다.

과제명은 "사랑과 성묘사" 였습니다.

교수님이 만족하실 만큼

적나라하고 예술적인 글이 나오지 않았던 건지

원래 수업과정과는 다르게

"사랑과 성묘사"만 연이어 세 번을 했습니다.



짜증이 치솟았습니다.

글쓰는 사람은 글로 말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글로 교수를 냅다 깠습니다.

완전 좋아하더군요.

진정한 마조히스트는 제가 아니라 교수님이셨습니다.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애들에게 물어보니

"사랑과 성묘사"는 이제 안한다더군요. 후후훗.




[창작] 관음본능



나는 관음본능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체리의 방이 제일 좋다.

체리는 거의 매일 밤마다 자신의 방으로 새로운 남자를 초대한다.

한창인 남녀가 긴긴 밤을 밀실에서 무엇을 하며 보내겠는가.

그녀가 남자를 데려오지 않은 밤 또한 그것대로 좋다.

하루라도 오르가즘을 느끼지 않으면 죽기라도 하는 양,

그녀는 혼자인 밤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흥분을 고조시킨다.




매주 목요일에는 이교수의 방에 꼭 접속해야한다.

자신을 국문과 교수라고 밝힌 중년의 남성이다.

제자들에게 ‘사랑과 성묘사’라는 과제를 주고,

그렇게 걷어 들인 과제물을 읽어준다.

처음에는 강의를 듣는 기분이라 지루했지만 점점 그 강의에 빠져든다.

젊은 애들의 적나라한 성적 표현이 꽤나 간질간질하다.

게다가 이교수는 가끔 여제자의 음성을 녹음해오는 센스도 보여준다.




아키코의 방도 재미있다.

아키코는 자신을 지켜보는 수많은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코를 판다.

TV를 보다가 한쪽 엉덩이를 치켜들고 방귀를 뀐다.

휴일에는 머리를 감지 않는다.

팬티 속에 손을 넣어 엉덩이를 긁는다.

체리처럼 매일 섹시하고 아름답게 보이려 애쓰는 것도 좋지만

아키코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도 좋다.

어쩐지 정말로 훔쳐보는 기분이 드니까.




처음 관음본능을 알았을 때에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사람들의 방을 몰래 보는 일은 엄청나게 음란하고

한편으로는 양심에 걸리는 일이었다.




여자의 나체를 보며 자위를 하곤 했는데,

여자가 카메라를 쳐다보았을 때는

마치 내가 보는 것을 들킨 기분에 책상 밑으로 숨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 긴장을 즐기게 되었다.

양심은 줄고 훔쳐보기에 대한 욕망은 매일 밤 커졌다.

거대해진 욕망을 오른손으로 가득 쥐고

매끈매끈한 모니터를 왼손으로 쓸어대며 그 차가움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나도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보통 남자다.

가끔은 진짜로 즐기고 싶다.

방으로 아가씨를 부르고 그녀가 오기 전에 관음본능에 접속해 두었다.

성관계를 하고 있는 방을 랜덤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그녀는 오자마자 펼쳐져 있는 타인의 성관계에 불쾌해 한다.

돈을 더 찔러주자, 마지못해 옷을 벗는다.

뽀얀 가슴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브라운관으로 한번 걸러진 나신에 익숙해진 탓에 숨이 턱 막힌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그녀에게 달려든다.

앞이 캄캄하다.

숨이 뜨겁다.

그녀는 깊고 질퍽하다.

아래로, 더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다.

정신이 아득하다.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생생한 교성이 낯설다.




문득 컴퓨터 모니터를 보니

얼굴이 벌게진 채 허리를 움직이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내가 허리를 들자 그 남자도 허리를 든다.

황급히 일어나 바지를 올린다.

그 남자도 그렇게 한다.

맙소사. 큰 충격에 다리가 꺾인다.




무릎을 꿇고 절규하는 남자의 위로

‘관음증 폐인의 방’이라는 타이틀이 반짝인다.






작성자 : 만복빌라

출처 : 행복한 마조히스트(sweetpj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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