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는 빌라

판다 판다 만복빌라 이천팔년 칠월 십삼일, 여자는 커다란 판다 인형 옷을 입고 강남의 어느 미용실 앞에 섰다 원더걸스의 텔미를 추며 명함크기의 전단을 나누어 주는 판다의 얼굴은 웃고 있다 행인1이 저 안에 에어컨 달려있다며 낄낄대도 아이3이 정체를 밝히라며 발로 차대도 여고생 무리가 씨발 존나 덥다며 인상을 써대도 여자는 없다, 거기에 연신 웃는 표정의 판다가 있다 대나무가 없는 강남 칠월의 태양 그리고 도시의 인간들은 판다에게 참으로 가혹했다 판다의 등에 달린 지퍼를 쭉 잡아 내리자 미끌거리는 액체를 잔뜩 뒤집어쓴 여자가 머리부터 쏟아져 나온다 여자의 젖은 손에 이만오천원이 꾹 쥐어진다 더운 바람이 훅 불자 여자는 고개를 까딱 하고 대나무가 없는 강남을 지나 칠월의 태양 아래 도시의 인간들 속으로 사라진다 .. 더보기
저는 봄이 싫어요 저는 봄이 싫어요 이제야 봄이 오네요. 사실 저는 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 여름이 제일 좋아요. 산이 푸르고 바다가 파랗고 공기가 뜨거운 여름이 제일 좋습니다. 여름에는 사물이 더 선명해 보이고 냄새가 더 진하게 풍기고 소리가 더 강하게 들립니다. 여름은 제가 살아 숨 쉬고 있구나, 하는 걸 느끼는 계절입니다. 여름은 매년 그렇게 강하게 저를 뒤흔들고 떠납니다. 하지만 봄은 다릅니다.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갑니다. 예쁘게 피었다가 이내 지고마는 꽃잎이 슬픕니다. 사람들 머리 위에서 살랑살랑 춤을 추다가 발밑에 떨어져 이리저리 구르는 꽃잎들. 매년 되풀이되는 그 끝없는 쓸쓸함이 아픕니다. 제게 봄은 너무 가슴 시린 계절입니다. 봄이 오면 꼭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못 본지 너무 오래 되서 얼굴.. 더보기
봄이 미쳤다. 봄이 미쳤다. 봄이 미쳤다. 아무래도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눈이 내렸다. 3월에 눈이라니, 하고 혀를 찼지만 기억을 조금만 더듬어 올라가보면 작년 3월에도 이렇게 눈이 내렸다. 나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핸드폰을 꺼내들고 양손 엄지를 열심히 놀려 여기저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밖에 봤어? 눈 온다.’ 라던가 ‘미쳤나봐 눈 막 와’ 하는 짧은 문장들이 어설픈 이모티콘들과 버무려져 인천으로 서울로 신창으로 전송 되었다. 1~2분도 지나지 않아, 핸드폰으로 답장들이 도착했다. 핸드폰을 진동으로 바꿔놓은 탓에 방바닥이 지르르 울려 와 나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슬쩍 훑어 본 문자메시지들은 그저 감기를 조심 하라던가 옷을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고 말 하고 있다. 언제 만들어 놨는지 숫자와 온갖 기호를 조합해 난로.. 더보기
그리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인어공주 패러디) 안녕하세요? 아, 아, 듣고 계신가요? 잘 들리세요? 제 말을 좀 들어주세요. 아니, 들으셔야 해요. 듣고 계시죠? 저는 이 바다 속에 살고 있어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바닷물이 항상 저를 감싸주고 있답니다. 어린 인어들은 작은 물고기들과 숨박꼭질을 하며 놀고 젊은 인어들은 돌고래를 타고 로데오 놀이를 하곤 해요. 늙은 인어요? 글쎄요, 알게 뭐람. 한낮이 되면 햇빛이 바다 속을 황금빛으로 가득 채워 줍니다. 그러면 젊고 아름다운 인어공주 하나가 햇빛을 조명 삼아 맑디맑은 노래를 불러주지요.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면 수많은 물고기들과 인어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환호성을 지르죠. 참 행복해 보입니다. 다들 너무 아름다워요. 하지만 저는 그들과 함께 .. 더보기
짬뽕 짬뽕 “그래, 그럼.” 그의 ‘그만 하자’는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빙긋 웃으며 말한다. 그대로 몸을 돌려 걷는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느린 걸음으로. 우스워 보이지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그러나 그는 나의 뒤를 따라 오지 않는다. 나는 모퉁이를 돌자마자 벽에 등을 바짝 붙인다. 고개를 살며시 내밀어 아까의 사거리를 건너다본다. 아무도 없다. 나는 그만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다. 공들여 한 화장 위로 한 줄기 물길이 트인다. 두 줄기. 세 줄기. 볼을 따라 흘러 턱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파운데이션을 한껏 머금어 황토색이 감돈다. 정확히는 트루베이지 13호겠지. 아, 검은색 물이 번진다. 내 랑콤 마스카라 이프노즈. 속눈썹을 떼어내 땅바닥에 던져버린다. 나쁜 자식. 집에 들어오자마자 거실에 대자로 .. 더보기
[창작] 관음본능 * 대학교 수업 때 과제로 제출했던 글입니다. 과제명은 "사랑과 성묘사" 였습니다. 교수님이 만족하실 만큼 적나라하고 예술적인 글이 나오지 않았던 건지 원래 수업과정과는 다르게 "사랑과 성묘사"만 연이어 세 번을 했습니다. 짜증이 치솟았습니다. 글쓰는 사람은 글로 말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글로 교수를 냅다 깠습니다. 완전 좋아하더군요. 진정한 마조히스트는 제가 아니라 교수님이셨습니다.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애들에게 물어보니 "사랑과 성묘사"는 이제 안한다더군요. 후후훗. [창작] 관음본능 나는 관음본능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체리의 방이 제일 좋다. 체리는 거의 매일 밤마다 자신의 방으로 새로운 남자를 초대한다. 한창인 남녀가 긴긴 밤을 밀실에서 무엇을 하며 보내겠는가. 그.. 더보기
[창작] Shake That * 대학 다닐때 과제로 썼던 짧은 글입니다. 주제는 무려 "사랑과 성묘사" 나름대로 야하게 묘사해봤으나 교수님은 더 야한 걸 원하셨나봅니다. ...이교수, 절대 잊지 않겠다. 으르렁... [창작] Shake That "Shake that ass for me, shake that ass for me. Come on girl, shake that ass for me, shake that ass for me." 좁은 클럽 안을 가득 채우는 노랫소리, 자욱한 담배연기와 현란한 조명 아래 미친 듯이 몸을 흔드는 사람들. 봉에 매달려 몸을 비비던 여자들이 내 앞으로 와 엉덩이를 흔들어댄다. 스치는 피부는 끈적끈적하고 뜨겁다. 지린 땀냄새에, 독한 샤넬코코의 향이 더해져 역하다. 나는 어느새 구석으로 밀려나온다. 이.. 더보기
[수필] 패녀(敗女)의 체육대회 응원기 저번주 일요일에 문학경기장에 SK 응원하러 온가족 출동. 제가 자리를 지키는 사이 가족들이 화장실에 갔습니다. 그 사이에 홈런을 연속으로 두개나 맞고 투수 교체. 헐. 이번에는 저 혼자 컵라면에 물 받으러 자리를 비웠더니 그 사이에 역전홈런이 터졌습니다. 헐. 내 덕에 이긴 거임. ㅇㅇ 그날 하늘에 달 보신 분 있나요? 가만히 누워있는 달 위로 금성이 반짝반짝 올라타있더라니까요. 부녀자 망상 폭발 : 금성X달 달 「누, 누가 보면 어쩌려고」 금성 「후후 이거 봐, 몸은 솔직한 걸?」 [수필] 패녀(敗女)의 체육대회 응원기 체육대회. 나와는 별로 친하지 않은 단어다. 땀 흘리고 난 뒤의 그 끈적거림이 싫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뛰어대는 심장과 거친 심호흡을 진정 시키기 위해 맨바닥에 대자로 뻗어 숨을 고르.. 더보기
어버이날 엄마! 제가 최초로 기억하는 엄마와의 생활은 7살 때예요.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중학교 시절의 일 조차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제겐 꽤 굉장한 기억입니다. 좋지 않은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이미 저는 어떤 아줌마를 ‘엄마’라고 부르는 생활에 익숙해져있었고 그 아줌마에게 저는 "딸"이었어요. 생각해보니 헛갈려서 아빠에게 ‘엄마’, 엄마에게 ‘아빠’라고 부르던 때도 있었네요. ‘엄마’와 ‘아빠’의 구분이 어려웠어요. 이해력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저는 저보다 나이가 조금 많으면 ‘언니’, ‘오빠’고 많이 많으면 ‘누나’, ‘형’인 줄 알았을 정도였잖아요. 엄마 아빠께 ‘누나’, ‘형’ 안 한 게 그나마 다행이죠. 그때 엄마는 다른 애들에게는 벌써 왔다는 ‘입학통지서’ 가 제게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걱정하고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