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 일요일에
문학경기장에 SK 응원하러 온가족 출동.
제가 자리를 지키는 사이 가족들이 화장실에 갔습니다.
그 사이에 홈런을 연속으로 두개나 맞고 투수 교체.
헐.
이번에는 저 혼자 컵라면에 물 받으러 자리를 비웠더니
그 사이에 역전홈런이 터졌습니다.
헐.
내 덕에 이긴 거임. ㅇㅇ
그날 하늘에 달 보신 분 있나요?
가만히 누워있는 달 위로 금성이 반짝반짝 올라타있더라니까요.
부녀자 망상 폭발 : 금성X달
달 「누, 누가 보면 어쩌려고」
금성 「후후 이거 봐, 몸은 솔직한 걸?」
[수필] 패녀(敗女)의 체육대회 응원기
체육대회.
나와는 별로 친하지 않은 단어다.
땀 흘리고 난 뒤의 그 끈적거림이 싫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뛰어대는 심장과
거친 심호흡을 진정 시키기 위해
맨바닥에 대자로 뻗어 숨을 고르는 모습은 추하다.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데 쓸 체력 따위 없다.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이 혹사당한 다음날 아침은 또 얼마나 끔찍한가!
저렇게 힘차게 날아오는 공에 맞으면 무척이나 아플 텐데,
그건 다들 아는 사실일 텐데도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던지고 받고 피하는 걸까?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체육대회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그야말로 체육대회계의 우녀(雨女)다. 아니, 패녀(敗女)다.
우녀가 비를 부른다면, 나는 패배를 부른다.
2002년, 대한민국이 붉게 물들었던 여름날.
나는 내가 패녀임을 자각했다.
황선홍이 연두색의 잔디구장에 붉은 피를 흘리며 뒹굴었다더라.
그런데도 다시 일어나 하얀 붕대를 머리에 두른 채 힘차게 뛰었다더라.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면서 더 화려한 수식어가 첨가되었고,
축구의 축자도 모르던 여고생들의 가슴은 마냥 설렜다.
태극전사의 세레모니에 여고생들은
아이돌 그룹의 공개방송을 구경하러 갔을 때처럼 자지러졌다.
그 여고생 무리에 나도 있었다.
하지만 여고생들은 월드컵이고 뭐고
일단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굴레와, 말만 자율학습인 타율학습에 묶여
그 짜릿한 감동을 라이브로 보지 못했다.
그저 새벽녘 에야 마주하게 될 인터넷 동영상을 고대할 뿐이었다.
엄마 몰래 야동 보는 남고생의 심정이 이와 같았으리라.
시즌 내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여고생들은 결국 일탈을 감행했다.
무려 준결승이었다. 독일쯤이야 쉽겠다 싶었다.
‘우리는 무적함대 스페인마저도 무찔렀다’는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교복위에 붉은 티를 덧입었다. 담을 넘었다. 무작정 달렸다.
그렇게 여고생들은 인천시청 앞에 모였다.
첫 응원이었다.
그리고 졌다.
터키와의 3ㆍ4위전도 졌다.
패녀는 그저 울었다.
학생주임선생님께 맞은 엉덩이보다 패녀로 낙인찍힌 가슴이 더 아파서 울었다.
신입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학교 행사에 참여를 강요받았던 2004년.
그 해 국어국문학과 체육대회 성적은 그 얼마나 참혹했던가.
2006년 월드컵은 또 어땠는가.
학교를 휴학하고 공장에서 등록금을 벌 때였다.
매일이 야근이었고 토요일도, 일요일도, 어쩌다 한 번 있는 빨간 날도 일을 했다.
말해서 뭐하나, 근로자의 날에도 근로자는 근로했는데.
고등학교 학생주임보다 공장의 반장님이 훨씬 무서웠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깐깐하고 독한 반장님께서 무려 조기퇴근을 하사하셨다.
우리는 다함께 문학경기장으로 갔다.
그리고 반장님 덕분에 난 또 한건했다.
그렇게 모든 패배의 현장에는 항상 나, 패녀가 존재했다.
어느덧 2008년 봄. 인문대 체육대회가 시작했다.
갑작스런 휴강 때문에 시간 때우기로 보게 된 국어국문학과 여자 농구.
야속하게도 패녀의 능력은 세월이 가도 무뎌지지 않았다.
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인문대에서 무려 자연대 앞 까지 따라 나와서, 사랑스러운 후배들에게 패배의 쓴맛을 안겨주었는가.
그래서 나, 패녀는 눈을 닫고 귀를 닫았다.
패녀가 등을 돌린 사이, 국문과는 우승을 향해 힘차게 달렸다.
줄다리기는 따라올 과가 없다더라.
축구도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승부차기로 두 번이나 이겼다더라.
들려오는 소문에 마음이 동해,
패녀는 주제넘게도 2002년 여고생의 설렘을 느꼈다.
자신감이 하늘을 찔러 붉은 옷을 덧입고 담을 넘어 달렸던, 그 때처럼 말이다.
이제 축구 밖에 남지 않았다.
한번이라도 승리의 현장에 있어보고 싶었다.
2002년의 그 여름처럼, 국문과는 준결승에 올랐다.
응원 했다.
그리고 졌다.
위대하도다! 참으로 위대하도다! 당신은 진정한 패녀였도다!
결론을 말하자면,
다행스럽게도 국문과는 패녀가 놓쳤던 그 줄다리기에서 우승을 했고,
그 덕분에 종합 우승을 거머쥐었다.
다함께 오광(오월의 광장)에 둘러 앉아 트로피에 막걸리를 따라 마셨다.
막걸리를 받아 마시고 자란 잔디가 더없이 푸르렀다.
막걸리를 받아 마시고 자란 학생들은 더없이 불그스레했다.
오광에 널브러진 작은 스피커에서 UNK의 Work it out이 쟁쟁 울렸다.
워키라, 워키라, 워키라, 워키라…….
그래, 그래 잘했다, 잘했어. 즐겁게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체육대회가 싫다.
땀 흘리고 난 뒤의 그 끈적거림이 싫으니까.
맨바닥에 대자로 뻗어 숨을 고르는 모습이 추하니까.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데 쓸 체력 따위 없으니까.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이 혹사당한 다음날 아침이 끔찍하니까.
공에 맞으면 아프니까.
그리고 내가 체육대회를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우리 편은 저렇게 웃고 떠들 수 있을 테니까.
패녀로서의 운명이라고 해두자.
출처는... 시인인데 수필 쓰는게 더 좋은 행복한 마조히스트(sweetpjy.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