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혼도 하지 않고 혼자 나를 키웠다. 학력도, 기술도 없었다.
어머니는 남의 가게 허드렛일을 도우며 생계를 이었다.
동네에 아직 인정이 남아 있어서 어떻게든 모자 둘이서 검소하게 살 수 있었다.
어디 멀리 놀러 갈 여유는 없었지만
일요일마다 어머니가 손수 만든 도시락을 가지고
동네 강가 같은 데로 소풍 가곤 했다.
월급을 받은 다음 날에는 도시락 대신 크림빵과 콜라를 사주셨다.
어느날 어머니가 직장에서 프로야구 티켓을 2장 받아 왔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프로야구를 볼 생각에 들떴고
어머니는 평소보다 약간 호화로운 도시락을 만들었다.
야구장에 도착해 티켓을 보여주고 들어가려는데 관계자에게 제지당했다.
어머니가 받은 것은 초대권이 아니라 우대권이었다.
티켓 판매장에서 한 명당 1000엔씩 더 내야 티켓으로 바꿀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갈 전철비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던 우리들은,
야구장 밖의 벤치에서 도시락을 먹고 집에 돌아갔다.
전철 안에서 말없이 앉아 있던 어머니에게 「즐거웠어요」라고 하자
어머니는「엄마가 바보같아서 미안해」라면서 살짝 눈물을 보였다.
나는 어머니를 괴롭게 한 가난과 저학력이 너무 싫어서 열심히 공부했다.
신문사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해서 남 못지 않은 사회인이 되었다.
결혼도 하고, 어머니에게 손자를 안겨드렸다.
그랬던 어머니가 작년 연말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눈을 힘겹게 뜨더니
「야구, 미안했어」라고 했다.
나는「즐거웠어요」라고 하려고 했지만
어머니는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