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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빌라

봄이 미쳤다.




 

봄이 미쳤다.





봄이 미쳤다.

아무래도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눈이 내렸다.

3월에 눈이라니, 하고 혀를 찼지만

기억을 조금만 더듬어 올라가보면 작년 3월에도 이렇게 눈이 내렸다.





나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핸드폰을 꺼내들고


양손 엄지를 열심히 놀려 여기저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밖에 봤어? 눈 온다.’ 라던가 ‘미쳤나봐 눈 막 와’ 하는 짧은 문장들이

어설픈 이모티콘들과 버무려져 인천으로 서울로 신창으로 전송 되었다.





1~2분도 지나지 않아, 핸드폰으로 답장들이 도착했다.


핸드폰을 진동으로 바꿔놓은 탓에

방바닥이 지르르 울려 와 나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슬쩍 훑어 본 문자메시지들은

그저 감기를 조심 하라던가 옷을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고 말 하고 있다.

언제 만들어 놨는지 숫자와 온갖 기호를 조합해 난로와 커피를 그려서 보낸 답장도 있었다.

갑자기 손끝이 시려서 답장을 보내지 않고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핸드폰이 다시 드르르하고 울리며 까맣게 잠들었다.






눈이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한 그날의 저녁식사는 그야말로 봄이었다.


온갖 봄나물로 맛있게 비빈 비빔밥과 짭쪼롬함 된장국이었다.

그렇게 향긋한 봄 내음이 가득한 식사를 끝내고 채 몇 시간도 안 되어,

나는 열손가락과 열발가락을 바늘로 다 따서 검은 피 몇 방울을 짜 내야만 했다.





다음날 학교도 빠지고 병원에 갔더니 급체, 라고 했다.


약을 먹어도 하루 종일 윗배가 딱딱하게 뭉쳐있어서 괴로웠다.

윗배가 아프니까 가슴도 아팠고

나아가서 허리도 못 견디게 아팠으며 종국에는 머리까지 아파져서,

앉은 것 도 아니고 누운 것 도 아닌 이상한 자세로 방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그저 칼로 윗배를 세로로 길게 째고,

그 한가운데에 턱 걸려있는 돌멩이 같은 것을 꺼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 다음날은 다행히도 학교에 갈 수 있을 만큼만 회복이 되었다.


윗배는 아직도 딱딱했지만,

기분은 왠지 좋아져서 오랜만에 치마를 꺼내 입었다.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를 입고

종아리 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가벼운 코트를 슬쩍 걸친 후에 겅중겅중 뛰쳐나갔다.





몇 걸음 걷자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공들여 한 머리를 뒤흔들어 놓았다.


또 몇 걸음 걷자 하얀 눈이 조금씩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윗배가 핸드폰 진동처럼 지릿하게 울리고 살살 아파왔다.






추웠다. 아팠다. 눈이 왔다. 힘들었다. 괴로웠다. 그리고 봄이었다.






작성자 :  만복빌라 (2007년)


출처 : 행복한 마조히스트(sweetpjy.tistory.com)





 


 


 

 

내가_2007년에_찍은_사진을_다_없앤_이유.jpg

...개는 털빨, 사람은 머리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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